밀라노 칙령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 교회의 세속화와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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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힌다.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면서 교회는 오랜 박해에서 벗어나 비로소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의 보호와 각종 특권을 누리게 된 교회는 점차 세속 권력과 결합했고, 그 과정에서 급속히 변질되어 초대교회의 신앙과 진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밀라노 칙령과 교회의 세속화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 맞붙은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승리하며 로마 제국 서방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했고, 이듬해인 313년 동방의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이 칙령을 계기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밀라노 칙령은 단순히 신앙의 자유만 보장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와 기독교인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게 했던 법령들을 무효로 했으며, 국가나 개인이 압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반환하도록 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성직자에게 납세와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고 세속 법정에서 재판받지 않는 사법상의 특전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각지 총독들에게 기독교인의 포교를 방해하지 말도록 지시하는 등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정책도 펼쳤다.

기독교가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고 교회와 성직자가 사회적 특권을 누리게 되자 교회는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에서 멀어져 급격히 세속화되었다. 출세를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일부 성직자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세속 권력과 타협했다.

밀라노 칙령 이후 교회의 진리 변개

사실 콘스탄티누스는 진심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것도, 순수하게 기독교인을 돕기 위해 기독교를 공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지속적인 박해에도 꾸준히 성장하던 기독교를 인정하는 한편 기존의 이교적 관습을 따르던 로마인들까지 함께 포용하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기독교를 보호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관하게 기독교와 태양신교를 혼합해 제국에 충성할 종교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던 로마 제국의 통합을 이루려 했다.

이러한 기조 속에 기독교는 점차 이교의 관습에 물들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는 321년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 일요일을 신성시하던 로마의 태양신교 세력과 일요일에 예배하던 서방 교회 세력을 하나로 묶었다.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자는 서방 교회의 주장을 지지함으로써 새 언약의 유월절이 폐지되도록 만들었다.

이후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본과 가르침이 아닌 사람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거짓 교리가 하나둘 자리 잡았다. 354년에는 로마의 태양신 탄생 축일이었던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해졌다. 이 밖에도 십자가와 성상, 성인 숭배 등 다양한 이교적 요소가 교회 안으로 유입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쉽게 적응하도록 한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보다 이교의 사상과 관습을 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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