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했다. 이스라엘 왕국의 태평성대를 이룬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사무엘하, 역대상 등 성경의 기록을 통해 그의 생애와 통치 역사, 업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다윗은 어떠한 시련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자’(행 13장 22절)라는 말씀을 들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는 언약궤를 모실 때에는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고, 마음을 다해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아끼시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하셨다(대상 17장 8절).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다윗을 장차 등장할 메시아를 표상하는 예언적 인물로 기록했다(사 9장 6~7절, 55장 3절, 렘 23장 5~6절, 겔 37장 24~25절, 호 3장 5절 등).
다윗의 생애
다윗은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모압 여인 룻과 보아스의 증손이기도 하다. 소년 시절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뒤를 이을 왕으로 미리 택하셨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악신 들린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며 시중드는 자로 일했다.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양을 물어가면 직접 양을 구해낼 만큼 담대했던 다윗은 소년 시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모욕하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무릿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춰 쓰러뜨린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의 죽음으로 혼비백산하는 블레셋 군대를 단숨에 무찔렀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영웅으로 부상한 다윗은 군대장관이 되었고 사울의 딸 미갈과 혼인했다. 다윗이 전투마다 공을 세워 인기를 얻자 이를 시기한 사울은 급기야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다윗은 사울의 위협을 피해 여러 지역으로 끊임없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을 때는 사울이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이유로 죽이지 않았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절친했던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자 슬피 울며 금식하고 애가를 지었다.
이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나머지 11지파는 사울의 신하 아브넬의 주도 아래 북쪽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스보셋은 즉위 2년 만에 살해당했고, 11지파 대표들이 다윗을 찾아와 기름을 부으면서 다윗은 전(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다. 다윗은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통치 기간 예루살렘으로의 천도를 계획하고, 여부스 족속에게 속했던 시온성을 점령해 이를 실현한 뒤 언약궤를 옮겨놓았다.
한편 다윗은 정복 전쟁 중 장관 요압을 시켜 장군 우리아가 전장에서 죽도록 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결혼했다. 선지자 나단은 이러한 악행을 질책하며 밧세바가 낳은 다윗의 아들이 단명할 것이라고 했다. 다윗은 깊이 회개했다. 이후 밧세바는 또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솔로몬이다.
이 밖에도 다윗에게는 여러 아내로부터 얻은 자녀가 많았는데 자녀들 간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중 셋째 아들 압살롬은 민중의 인기를 얻어 반역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 기세가 등등해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정도였으나 결국 압살롬 군대가 패하면서 압살롬은 요압에게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크게 통곡했다.
다윗의 말년에는 자녀들 간에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다. 아들 중 연장자인 아도니야는 연회를 열어 왕위 계승을 자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후계자로 정하셨고, 다윗은 제사장 사독을 보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형통할 것이라고 유언하며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쳤다.
이스라엘 왕 다윗의 업적
출애굽 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뚜렷한 정치적, 행정적 구심점 없이 지파 간의 동맹을 바탕으로 지내왔다. 각 지파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뿐이었다. 왕이 된 다윗은 먼저 이스라엘 전체의 중심이 될 수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후보지로 시온성을 택했다. 삼면이 골짜기로 둘러싸여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시온성은 당시 여부스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윗은 성으로 통하는 수로를 이용해 시온성을 점령했고, 시온성이 있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삼하 5장 6~9절
다윗은 재위 기간 블레셋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며 오히려 블레셋 정복 전쟁에 나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혔다. 또한 오늘날의 시리아, 요르단, 네게브 일대에 해당하는 북쪽의 아람–다마스쿠스, 동쪽의 암몬과 모압, 남쪽의 에돔까지 정복했다.
치세 말기에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모리아산에 위치한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매입해 성전 터로 삼고, 건축 설계와 재료, 자금 등을 마련했다. 훗날 다윗의 대를 이은 솔로몬이 이를 바탕으로 성전을 건축했다. 이 밖에도 다윗은 성전 봉사 직무를 정비하고, 성경 시편의 다수를 기록하는 등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